정보이야기

불황은 이긴 점포들?..

행복지킴이1 2005. 10. 6. 19:06

[트랜드] 불황을 이긴 점포들?

불황을 뚫기 위한 유통업계의 노력은 한마디로 눈물겹다. 백화점에서 500만원대의 PDP TV가 100원 경매에 나오는가 하면, 고가 아파트에 유전자(DNA) 검사권까지 경품으로 내걸기도 한다. 한 외국계 할인점은 직장인들의 1년치 연봉인 4천만원짜리 상품권을 고객 한 명에게 몰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취재에 만난 유통의 고수들은 불황일수록 보다 정교한 판촉기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조건 눈길을 끌고 보자는 식은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일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장은 “백화점에서 싸구려 경매를 한다거나 사은행사를 지나치게 많이 하면 판매하는 상품의 가치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백화점을 찾는 고객의 니즈(needs)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들 유통업의 성공요인으로 ‘품질-가격-서비스’를 꼽는다. 하상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박자를 고루 갖추거나 업태별로 특정요소를 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할인점은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상품, 백화점은 고급 상품과 질 높은 서비스 등에 치중하라는 것이다.

백화점의 성공포인트로 꼽히는 것은 아무래도 ‘고객관계관리’(CRM)다. CRM이란 유통업체들이 고객정보를 적극 활용해 구매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최순화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불황에 지치고 위축된 고객의 구매욕구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소비 니즈를 발굴해 내는 조사역량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일본 미츠코시 백화점의 경우 고객에게 전화해선 안 되는 요일, 고객 자녀들의 결혼 예정일, 집 리모델링 예정일 등에 대한 정보까지 입수해 놓고 있다고 한다. 신세계 강남점도 CRM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점포로 꼽힌다. “사은품을 줄 때 구매하는 고객, 세일기간에만 오는 고객, 평상시에도 들르는 고객, 신상품에 유독 관심이 많은 고객 등으로 세분화해 고객 데이터를 분류하고 있죠. 고객 한명 한명에 대한 구매실적을 통해 그들의 라이프를 분석하는 게 필요합니다.” 남윤용 강남점 판촉과장의 말이다.

이와 관련해 박진 LG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국내 유통업체들의 CRM은 수익과의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예컨대 1억원어치 물건을 산 고객 한 사람과 3천만원어치 물건을 산 고객 세 사람이 있다고 치자. 어느 쪽에 더 서비스를 집중할 것인가. 대체로 업체들은 1억원어치를 산 한 명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3천만원어치를 산 세 명을 관리하는 것보다 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효율성을 높이긴 어렵다.

할인점의 경우 더 이상 저렴한 가격만 강조해선 안 된다는 것이 포인트다. 할인점 도입 초기에는 업태 간 경쟁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할인점업계 내에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최저가를 내놓기 때문에 다른 차별화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처음부터 백화점식 쇼핑 환경을 표방했던 홈플러스는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업계 선두인 이마트를 추격하고 있다. 비식품부문의 매출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최명진 삼성테스코 마케팅팀 차장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인기 브랜드들이 할인점에 입점하게 되면서 식품쪽 말고도 의류, 가전 등의 비중을 늘리는 추세”라고 말한다.

홈플러스는 물류 시스템을 개선해 고정비용을 줄인 뒤, 상시 할인정책인 ‘프라이스 컷’(price cut) 제도를 쓴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영아 삼성증권 연구원은 “일시적인 전단행사가 아닌 항상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제공한다는 정책은 불황기에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전략”이라고 전한다.

여기에다 홈플러스 안산점은 지역주민과 밀착된 마케팅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승호 안산점장은 “동네 초등학교들의 운동회가 언제인지부터 지역주민들의 고향이 어디인지까지 세심한 분석을 하지 않으면 경쟁점포에게 고객을 뺏기게 된다”고 말한다. 근거리 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란다. 불가마, 헬스클럽, 음식점 등 17~18군데 동네 자영업자들과 제휴를 맺어 홈플러스 카드를 소지한 고객들에게 할인 혜택을 준 것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밖에 구매편의성이 강점인 홈쇼핑은 탄력적 상품구성으로 불황을 헤쳐나가고 있다. 불황을 덜 타고 판매마진이 높은 상품을 위주로 편성을 늘리는 식이다. CJ홈쇼핑 정보통신팀은 이런 측면에서 외형성장의 대표선수였던 PC판매를 줄이고 디지털 카메라나 MP3 등 보급률이 낮은 제품을 발빠르게 편성해 높은 매출을 올렸다. 케이블TV의 가시청가구수의 증가가 정체되면서 향후 경쟁은 인터넷시장에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하상민 연구원은 “전자상거래 시장의 경우 지금은 저가를 무기로 고객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는 디앤샵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터넷몰 중 하나다. “얼마 전에는 청담동 미용실의 퍼머상품권을 디앤샵에서 5만원 이상 싸게 팔았는데,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차별화된 상품들을 계속 발굴해 낼 겁니다.” 이숙희 디앤샵 팀장의 말이다.

편의점들은 생활 서비스 기능을 대폭 강화시킴으로써 동네 상권 장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LG25는 공공요금 수납은 물론이고 각종 상품권, 승차권, 생화배달 서비스, 휴대전화 충전, 사진 인화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최근에는 스포츠입장권 발매, 항공권 예매 및 발권 서비스, 롯데월드 입장권 발매 등 문화 관련 서비스도 확충하고 있다.

유통 전문가들은 불황에 살아남는 기업은 경기가 회복된 뒤에 성장률이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기가 안 좋을 때일수록 바잉파워를 높이고 시스템을 최적화시켜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외부 환경만 탓하고 있다가는 판매부진에서 벗어나기 힘든 때다.